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경 이오니아 사모스~BC 500경 루카니아 메타폰툼.  그리스의 철학자·수학자.

 본래 종교모임이지만 그가 창설한 피타고라스 승려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고에 영향을 준 원리를 형성했고 수학과 서구 합리철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피타고라스는 BC 532년경 남부 이탈리아로 이주했는데 아마 사모스의 참주정치를 피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그는 크로톤(지금의 크로토나)에 도덕·정치 아카데미를 세웠다.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의 것과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의 저작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전혀 없으며, 제자들은 스승의 권위를 아무렇게나 인용해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피타고라스는 객관세계 및 음악에서 수(數)가 갖는 기능적 중요성에 관한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종종 그의 이름과 결부되는 그밖의 발견들(예를 들면 정4각형의 변의 길이와 대각선 길이의 약분 불가능성 및 직각3각형의 피타고라스 정리 등)은 아마도 피타고라스 학파의 제자들이 나중에 밝혀낸 것인 듯하다. 더 나아가 피타고라스 자신에게서 직접 나온 지성적 전승의 대부분은 과학적 학문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 지혜에 가깝다.

피타고라스 주의(Pythagoreanism)

이오니아 사모스 태생의 피타고라스가 창설했다고 여겨지는 철학 학파이자 종교결사체.

피타고라스는 BC 525년경 남부 이탈리아 크로톤에 살았다. 피타고라스주의 사상은 고대부터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사상의 일반적 성격은 ① 수(數)의 형이상학과 실재는 본래 수학적이라는 관념, ② 영적 정화(淨化) 수단으로서 철학의 역할, ③ 영혼의 윤회와 영혼과 신적인 것의 합일가능성, ④ 테트락티스(tetraktys)·황금분할·우주조화 등과 같은 상징에 대한 호소, ⑤ 피타고라스 정리, ⑥ 집단의 구성원들이 충성심을 갖고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오니아 학파의 자연주의와는 달리 피타고라스주의는 오르페우스교와 같은 신비적·종교적·정서적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진지한 철학적 관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 이전 시대의 자연주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 학파도 형이상학(존재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과는 달리 존재의 본성을 어떤 실체가 아니라 수학적 형상(形象)에서 찾았다. 피타고라스 학파도 본래 이오니아 학파에서 비롯된 주장, 즉 세계가 대립자들(젖은 것과 마른 것, 더운 것과 찬 것 등)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제한적인 어떤 것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수용했으나, 무제한적인 것에 제한을 부여하는 관념과 우주의 음악적 조화라는 관념을 덧붙였다. 이오니아 학파처럼 그들도 천문학적·기하학적 사변에 몰두했다. 수에 관한 합리주의적 이론을 수수께끼 같은 수비학(數秘學)과 결합하고 사변적 우주론을 영혼에 관한 신비스런 이론과 결합함으로써 피타고라스주의는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를 뒤섞어놓았는데, 이러한 특징은 고대 그리스의 다른 어떤 사상운동에서도 찾기 힘들다.

주요관심과 학설

종교와 윤리

영혼의 윤회에 대한 믿음은 피타고라스주의 생활방식의 기초를 이루었다. 몇몇 피타고라스주의자는 윤회설을 '모든 존재의 친족성(親族性)'이라는 원리에서 이끌어냈는데, 이 원리의 윤리적 함축은 BC 4세기에 와서 특히 강조되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전생(前生)을 기억하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가 가르친 종교적 생활규칙은 "신성한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 흰 옷을 입어라, 성적(性的) 순수성을 지켜라, 콩을 먹지 말라" 등 주로 의례(儀禮)에 관한 것이었다. 또 그는 더 나은 생(生)에 도달하기 위해 음악 및 정신활동(철학)을 통한 영혼의 정화를 가르쳤다고 한다.